세계 음악

Stranger on the Shore - Slim Whitman

이석화 2018. 4. 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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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r on the Shore - Slim Whitman









Stranger on the Shore

Slim Whitman

 

Here I stand, watching the tide go out
So all alone and blue
Just dreaming dreams of you

I watched your ship as it sailed out to sea
Taking all my dreams
And taking all of me

The sighing of the waves
The wailing of the wind
The tears in my eyes burn
Pleading, "My love, return"

Why, oh, why must I go on like this?
Shall I just be a lonely stranger on the shore?

The sighing of the waves
The wailing of the wind
The tears in my eyes burn
Pleading, "My love, return"

Why, oh, why must I go on like this?
Shall I just be a lonely stranger on the 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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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m Whitman


본명은 Otis Dewey Whitman Jnr.로 1924년 1월 20일 Florida주의 Tampa에서 출생. 어렸을 적

그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다. 이제 그는 그 버릇이 고쳐졌지만

아직도 그는 대중앞에서 이야기를 하는데엔 관심도 없고 무대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끼는 편에 속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Jimmie Rogers와 Slim Montana의 레코드를 듣고 흉내내면서 노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7세의 나이로 15세의 Geraldine Crisp와 결혼을 한 그는 Jacksonville남쪽의

농장으로 이주하여 고기를 포장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몇년 후에 왼손의 손가락 두개를 잘린

그는 Tampa의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제 2차대전에 해군으로 입대했다  해군에서 그는 왼손잡이처럼

기타를 치는 법을 익힌 그는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능을 보였고 그의 지휘관은 그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할 정도였었다고 전해진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소로 복귀했던 그는 Orange Belt

리그의 C급 야구팀인 the Plant City Berries에 입단한다. 1948년까지 팀에 있었지만 야구보다

노래가 좋았던 그는 간간이 지방 라디오 방송에 나가 노래를 하곤 했다.

당시 Eddie Arnold의 매니저였던 Tom Parker가 그가 WFLA라디오 방송에서 노래하는 것을 듣고

 RCA와 1948년말 계약을 하게끔 주선해주었다.  RCA는 그의 이름을 Slim으로 바꿀 것을 제의했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첫 싱글음반 "I'm Casting My Lasso Towards the Sky"이 1949년

나왔고 이어 여름엔 the Mutual Network's Smokey Mountain Hayride에서 전국무대 데뷔를

하였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어 그는 노래를 하는 한편 파트타임 우편배달일을 해야했다.

 

1950년 그는 "Love Song of the Waterfall"로 컨트리음악 Top Ten안에 드는 첫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어진 히트곡 "Indian Love Call"이 컨트리 음악 2위에 팝에서도 10위안에 들면서 그를 드디어

스타로 만들었다.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열심히 활동을 하던 그는 1955년 영화 "Rose-Marie"의

 타이틀 송으로 유럽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1956년 영국 공연당시엔 London Palladium에서

공연한 첫 컨트리가수가 되었고 이후로 그는 영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영국에서 거둔 성공에

 비해 미국에서는 1954년 이후 40위 안에 드는 곡이 단 두곡에 불과할 정도였던 그는 1965년 "More

 Than Yesterday"로 다시 컨트리음악 10위이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이후로는 간간이 작은

히트곡만 낼뿐이다가 1974년 이후 새로운 취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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